2018년 세계 에이즈의 날 ‘HIV/AIDS 혐오를 멈춰라’ 집회 공동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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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8-12-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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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계 에이즈의 날 ‘HIV/AIDS 혐오를 멈춰라’ 집회 공동선언문


하나. 정부에 요구한다

법에 명시된 감염인의 권리가 왜 현실에서는 보장되지 않는가
이 간극을 인식하고 이를 없애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라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는 감염인은 타인에게 감염시킬 수 없다
U=U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적극적인 인식 개선에 나서라

콘돔만을 강조하던 예방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사전예방약의 접근성을 높여 에이즈 공포를 끝내자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의 악성조항 폐지하라
예방 효과 없는 전파매개금지조항을 폐지하고 제대로 된 예방책을 마련하라

공중보건정책에 에이즈공포를 이용하지 말라
감염인 인권 보장과 국민 건강권 보호는 분리될 수 없다

혐오와 차별이 범람하는 시대, 정부의 역할을 묻는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정부는 에이즈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와 거부감을 해소할 키를 쥐고 있다. 에이즈 분야의 가장 큰 혁신인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성명이 바로 그것이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 바이러스 수치가 낮아진 감염인은 타인에게 전파력을 상실한다는 이 성명은 작년 미국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해 공신력 있는 학회와 단체들의 지지를 받아 이제 확고한 사실이 되었다. 왜 정부는 침묵하는가? 왜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가? 이는 단지 공중보건 상 성매개 감염병을 더 쉽게 통제하겠다는 이유로 침묵한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는 감염취약군 집단을 관리하고 통제할 목적의 지원과 함께 예방에 그 어떤 실효성도 없는 사후적 조치인 전파매개행위금지라는 조항을 두어 그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감염인 개인의 행동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은 감염 사실을 알고 치료를 받아 전파력이 없는 감염인들을 예비 범죄자로 만드는 악성 조항이다.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가중되는 국민의 불안에 대해 국가는 예방조치를 법에 명시했다고 면피하며 감염인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도록 유도한다.

각자의 삶이 처한 조건과 맥락이 다름에도 그에 대한 고려 없이 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자신의 삶을 관리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 조항은,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이들에게 국가가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치료받고 싶어도 의료진의 진료거부를 당해야 하는 삶,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편견으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삶, 자신이 배척되고 고립될까 두려워 감염 사실을 드러낼 수 없는 삶. 사랑을 이야기할 때에도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거짓말해야 하는 사회는 누구에게도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감염인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고 그가 동료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감정적 판단을 잣대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동료 시민을 모욕하는 가짜뉴스는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으며 그것이 감염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심각성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 에이즈는 죽을병이 아니다. 이제 만성질환화되어 건강히 살 수 있는 질병인데 어째서 HIV를 가졌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가?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 해소,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져야 이러한 비극이 사라진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HIV감염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그에 대한 합리적인 정책을 마련할 근거로 발전하는 대신 혐오세력이 소수자를 공격하고 모욕하는 막말의 근거가 된다.
정부는 지금 당장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소수자 집단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고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에 대해 엄벌할 장치를 만들라. 또
한 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인권의 사각지대를 메울 방안들을 당사자의 목소리와 함께 고민해나가야 한다.

둘. 언론에 요구한다

HIV/AIDS는 단순히 감염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인권과 소수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언론은 HIV/AID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보도해야 하며
대중의 비합리적인 공포와 부당한 편견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누구라도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구조적인 차별을 지적하는 대신 정체성을 비난하며 혐오를 정당화하지 말라

왜 어떤 사람은 차별받아도 된다고 간주되는지
그 부당한 구조와 맥락을 읽는 시각을 사람들에게 제시하라

무책임한 일부 언론은 우리 사회에서 감염인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지만 선정적으로 보도할 뿐, 몸에 바이러스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이러한 극심한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그 사회적 약자를 생산하는 구조가 어째서 변화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있다. 보수 세력은 소수자 인권이 증진되고 다양성이 가시화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흐름을 저지하는 강력한 무기로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실제 HIV를 가지고 살아가는 감염인들을 위축시키고 그들이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도 그에 대한 요구를 무력화한다. 그 틈을 비집고 감염인을 위하는 척, 성소수자를 위하는 척 교묘히 혐오문법이 끼어들고 그것을 언론은 용인하거나 더 나아가 조장하기까지 한다.

외부 기고는 본지와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한 줄로 사회에서 차별받고 편견 속에 고통받는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언론의 의무를 방기하지 말라. HIV감염 사실과 상관이 없는 범죄를 연결시켜 부정적인 편견을 증폭시키는 무책임한 보도 행태를 각성하라. 남성 동성애자를 항문으로, 바이러스로 묘사하지 말라. 병을 묘사하는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언어들로 감염인을 서술하지 말라. 개인의 감정적 판단에 근거해 부정적인 편견과 혐오감을 부추기지 말라.

무엇이 감염인을, 소수자를 동료 시민으로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가.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는 모멸적인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유도하려는 감정은 무엇인가? 부당한 현실을 바꿔내는 분노인가? 개인의 정체성을 비난할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하며 혐오감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인가?동성애자라면, 감염인이라면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가 침해되어도 마땅하다고 설마 생각하는 것인가? 구조적인 차별을 지적하는 대신 정체성을 비난하며 혐오를 정당화하지 말라.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확산시키고 감염인 혐오를 조장하는 글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시대의 흐름을 읽을 눈이 없는 무능한 언론이라는 뜻이다. HIV/AIDS 이슈는 간단하지 않다. 전문적 의학 지식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며 사회적으로 여러 겹의 낙인이 얽혀 있는,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두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전장이다. 이 전장에서 필요한 것은 딱딱한 사실이 아닌, 그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밑그림이 되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회의 모습에 대한 믿음과 그 청사진일 것이다.
부디 언론으로서 지녀야 할 윤리의식과 태도에 대해 깨닫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담아내길 바란다.

셋. 시민 사회에 요청한다

아파도 되는 사람, 모욕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혐오에 맞서자

소수자 집단의 취약성이 제도적 차별의 근거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제도 개선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같이 투쟁하자

쉽게 답할 수 없는 현실의 고민을 삶을 바꾸는 질문으로 만들자
함께 연대하며 살고 싶은 사회의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어나가자

2018년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인권은 오직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에 근거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이 아닐 때 어떠한 비극이 벌어지는지 경험했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인권을 우리 사회가 수호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게 되었다. 인권 증진을 향한 요구는 소수자를 향한 모욕과 혐오선동 속에서, 아파도 진료받지 못하고 마음 편히 직장을 다닐 수 없는 구체적인 현실의 차별들을 변화시키라는 요구로서, 지금 새로운 삶과 세상을 상상할 질문으로서 존재한다.

HIV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취급되었을 뿐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감염인 집단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및 시민사회와의 만남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모욕하면서 제멋대로 판단하고 떠들었던 이들 대신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누군가의 귀와 마음에 가 닿아야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공허한 외침으로 남겨두는 무관심 대신 우리 함께 고민과 삶을 나누며 교차점을 찾아내자.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주변화된 삶, 탈락한 삶이기에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마땅한 권리에서 배제되던 시대를 끝내자. 아파도 되는 사람, 모욕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과학의 발달로 에이즈는 이제 더는 두려운 질병이 아니다.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입장을 가지고 혐오에 맞서자. 이제 혐오와 낙인을 끝장내자!

넷. 우리는 선언한다.

모두의 평등을 노래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성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을 더욱더 꽃피우기 위해,
인권선언 70주년의 의미를 새기고 지금 이 땅에서 필요한 존엄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확산하기 위해,
HIV/AIDS 인권운동을 더 나은 삶과 미래를 만드는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서 선언한다.

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우리는 다시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 모두의 평등을 노래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성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을 더욱더 꽃피우기 위해, 인권선언 70주년의 의미를 새기고 지금 이 땅에서 필요한 존엄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확산하기 위해서 누구 한명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들이다. 혐오의 시대는 불평등을 자양분 삼아서 사람들의 관계를 파괴하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지만 그럴수록, 주변부에 밀려난 우리들은 서로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면서 동료되기를 실천할 것이다. 우리가 일구는 작은 인권의 땅에 아프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이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여기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정당한 몫을 빼앗긴 사람들이 권리를 찾아나가길 바란다. 우리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서 맞서는 대신 단지 어떤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어떤 질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어떤 삶의 방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비난과 모욕을 감내하게 만드는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끝까지 투쟁한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은 또 하나의 오늘, 인권의 의미를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들 공동 선언문을 함께 낭독한다.

2018년 12월 1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인권선언 70주년 인권주간 조직위원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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