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세계인권선언 70주년, 에이즈혐오를 끝내기 위한 국가책임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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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8-12-09 23:36
조회
412
[성명]세계인권선언 70주년, 에이즈혐오를 끝내기 위한 국가책임을 요구한다

혐오조장에 앞장서며 인권을 위협하는 국민일보, 헬스조선, 설동호(대전시 교육감), 이은권(자유한국당), 정용기(자유한국당), 염안섭(가정의학 전문의), 김준명(연세대 감염내과 명예교수)

그 혐오조장을 방조하는 정부
모두 강력히 규탄한다!

매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한국에서는 HIV 감염인 인권의 날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12월 1일 토요일, 여러 인권단체들은 서울 세종로에 모여 감염인들의 치료받을 권리, 법리적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평등한 노동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권리 등 여러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보장하고 제도화하라는 의견을 모으는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같은 날, 같은 시간 대전광역시 교육청 대강당에서는 에이즈 ‘퇴치’와 ‘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진부한 HIV/AIDS 혐오의 논리가 마치 고장난 태엽인형처럼 되풀이되었다. 퍼스트코리아 대한민국 바로세우기국민연합(이하 퍼스트코리아)의 주관, 주최로 열린 이 ‘세계 에이즈의 날 맞이 에이즈 퇴치•예방 캠페인’ 행사에서는 과거 HIV 감염인 인권침해의 집합체로서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중증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해지당한 바 있는 수동연세요양병원의 원장인 염안섭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설동호 대전시 교육감, 대전 중구의 이은권 의원(자유한국당), 대덕구의 정용기 의원(자유한국당)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국민일보는 동성 간 성행위와 HIV 전파를 묶는 김준명 의사의 기고문을 실었다. 또한 지난 6일 헬스조선은 잘못된 정보로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며 공중 보건을 위협할 수 있는 기사를 실었다.

염안섭 가정의학 전문의는 매번 똑같은 에이즈 혐오 타령을 들고 강단에서 또 다시 1980년대의 논리로 HIV 공포를 조장하였다. 하지만 첫 HIV 감염 발병 이후 30년 이상 지난 지금, 바이러스 치료에 있어서는 눈부신 의학적, 치료적 발전이 있었고, HIV 감염은 만성질환화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의학계에서는 HIV 감염인이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면 HIV의 활동성이 억제되어 감염인의 혈액에서 바이러스 검출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들이 차곡차곡 쌓여왔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2016년,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치료를 통해 혈액 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감염인은 타인을 감염시킬 수 없다는 내용의 국제 공중 보건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그 말인즉 HIV가 인간의 체액을 매개로 하는 만큼, 감염인들의 혈중 바이러스 수치가 0에 수렴하게 되면 HIV는 전파될 수 없고, 그러한 건강 상태를 개인 단위에서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 바로 커뮤니티 단위 예방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가장 효과적인 HIV 예방은 사람들이 자신의 HIV 감염여부를 알고 있고, 이에 따른 치료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질병관리본부와 캐나다 보건당국, 그리고 호주의 보건당국등은 이 캠페인을 보건 정책에 적극 수용, 반영하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은 평창올림픽 시대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88올림픽 시대의 기억과 잘못된 정보를 잃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강단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HIV 혐오를 선동하는 데 단골로 등장하는 동성애 혐오 역시 빠지지 않았다. 동성애자들의 문란한 성행위는 한국 사회를 위협한다는 일차원적인 혐오의 논리는 바뀌지 않았다. 이는 대전의 강연에서도, 김준명 의사의 기사에서도 반복되었다. 특히, 김준명 의사의 기고문은 정체성인 ‘동성애자’를 마치 질병의 위험요인으로 치부하는, 개념적으로 잘못되고, 위험한 기저를 바탕에 두고 쓰였다. 이러한 시선은 사실, 예방에는 최악이다. 먼저, 과학적 근거가 바탕된 HIV 및 성교육이 부재한 이 나라에서, 성매개 감염질환인 HIV의 전파 책임을 교육 및 예방을 하지 않은 국가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감염인들,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 감염인들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감염인들은 성소수자라서 받는 차별에 감염인이라서 받는 추가적 낙인으로 인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그들의 치료를 방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치료의 방해는, 결국 국가적 차원의 HIV 예방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한, HIV에 대한 논의가 동성애로 귀결될수록 이성애자 집단은 마치 HIV 감염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그래서 안전하지 않은 성행위를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질병에 대한 비과학적인 공포와 낙인찍기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필요한 정보와 행동으로부터 단절시킨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에게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한 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중보건적 목표와 닿아 있다면, 혐오를 조장했던 퍼스트코리아의 행사는 과연 진심으로 ‘예방’을 목적으로 하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건강정보’의 외피를 쓴 헬스조선의 기사는 어떠한가. “동성 간 성접촉에서 에이즈 발생 위험이 높은 이유는 뭘까? 동성끼리는 주로 항문을 이용한 성관계를 하는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라는 이토록 무신경한 ‘추정’은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을 너무 간단히 불행한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모욕하고, 김준명의 연구를 반복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코호트 연구’가 동성애혐오에 이용되는 현실을 무신경하게 강화했다. 혈액 내 HIV가 미검출인 남성 동성애자들이 서로 항문성교를 수만 차례 하더라도 HIV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HIV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했을 때 감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후자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 콘돔을 사용하거나 사전예방약을 복용하는 등 HIV 감염 가능성에서 안전해질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동성 간 성접촉, 항문성교를 바로 에이즈로 연결하며 남성 동성애자를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묘사하며 독자들에게 부정적인 편견을 조장했다. 헬스 조선은 HIV 예방을 위한 진짜 정보를 폐기하는 동시에 동성 간 성접촉을 하는 사람 자체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혐오와 차별 선동 논리만을 반복한 것이다.
이 기사가 위협하는 것은 동성애자, HIV 감염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성적 건강정보에 대해 쓰여진 기사는 HIV에 감염될 우려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HIV 예방을 위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주고, 항문성교 시 상처가 나지 않는 방법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멸시와 갱신되지 않은 빛바랜 정보의 확산이 이루어졌던 대전의 행사가 시교육청 건물에서 만연히 벌어졌다는 것 역시 규탄할 일이다. 대전시 교육청과 설동호 대전 교육감이 공적인 공간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허위 정보, 즉 가짜뉴스를 유포한 사실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설동호 교육감은 지난 교육감 후보 토론회에서 학교 내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바가 있다. 설령 그 당시에는 후보였을지 몰라도, 현재 하나의 광역시의 교육을 아우르는 자리에 선출되었다면, 자신의 혐오적 관점을 돌아보고 모두의 존엄함을 인정하는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에 더불어, 12월 1일의 이 행사에는 지역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를 통한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 동원되었다. 봉사 활동 시간을 담보로 청소년을 혐오의 재생산의 장에 참여시키고, 가짜뉴스에 노출시킨 것을 교육을 담당하는 정부부서가 용인하고 장려한 것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HIV 감염인도 엄연히 이 사회를 구성하는 존엄한 인간이다. 감염인들이 처한 상황을 논하려면 이들의 성적 지향, 성행위, 감염 여부 등의 개인적인 면모들을 헤집어 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가하는 낙인과 혐오, 제도적 배제가 무엇인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감염될 수 없지만,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감염인을 이웃으로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HIV에 대한 무지와 그에 기인한 비이성적 공포가 얼마나 팽배한지 보여준다. 그리고 에이즈예방법은 감염 사실을 알고 있고,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는 감염인의 성생활을 통제하고 있으며, 그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그림의 떡과 같은 효율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올바른 정보를 습득하고 전파하는 성숙함을, 그리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법에 항의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야 한다. 정말로 배척되어야 할 것은 공포를 조장하는 가짜뉴스이지 감염인이 아니고, 정말로 고쳐져야 할 것은 제도이지, 이들의 성적 지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 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혐오와 차별 선동의 문제가 당사자의 목소리와 전문가들의 반론으로 바로잡힐 문제만은 아니다. 차별과 혐오의 구조가 깊고, 혐오차별선동의 목소리가 주류 언론을 통해서 쉽게 유포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러한 잘못된 정보와 혐오차별선동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이로 인해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한 것은 피해자 구제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는 것의 해악이 소수의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구성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진다. 정부에게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편향적인 시각을 당장 시정하라는 것이다. 정부의 편향된 시각에 따라 불평등하게 제공되는 정보 자체가 차별임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HIV 감염인의 코호트 연구 결과가 혐오세력이 남성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책임과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에이즈에 대한 비과학적인 혐오와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확산되는 걸 방관하지 말라. 또한 국제사회와 캐나다 등의 정부에서 도입하고 있는 U=U 캠페인의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하라.

이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외친다. 그 누구도 HIV 감염인이 될 수 있기에, 그리고 특히나 성소수자이면서, 여성이면서, 장애인이면서, 이주노동자이면서 HIV 감염인인 이들이 우리 곁에 있기에, 보편적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모순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호해줄 제도적 장치 마련을 국가에 요구한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은 용인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건전한 비판•반대”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 및 국제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 세계 인권 선언 제28조이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이 선언이 실현될 수 있도록 혐오선동자들과 이에 동조한 교육계는 반성하고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의 공동체가 인권적일 수 있도록 혐오의 논리를 넘어 사람을 보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2018. 12. 09.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러브포원 /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 장애여성공감 /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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