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낙인과 착취로 얽힌 삶을 누가 죄인으로 만드는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5-16 11:43
조회
2868
[논평] 낙인과 착취로 얽힌 삶을 누가 죄인으로 만드는가?
- 부산 지적장애 HIV 여성감염인에 대한 1심 판결에 부쳐
지난 9일 부산 지적장애 HIV 여성감염인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결국 이 여성은 죄인이 되었다. 지난 해 10월 언론과 인터넷 미디어를 혐오로 달구었던 사건이었다. HIV에 감염된 여성이 성매매를 했다는 소식에 ‘부산에이즈녀’ 라는 낙인의 딱지가 붙었고, 10월 19일 하루 동안 총 250여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과 댓글이 만들어낸 이러한 낙인은 당사자의 삶의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서도 이 여성이 처한 억압의 핵심을 짚어낸다.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질병에 노출될 수 있는 조건에 놓여있고, 치료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으며 타인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의학적인 사실 외에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낙인과 이러한 사실 자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에 국가로부터 관리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예비범죄자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여느 질병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지위의 부여는 HIV 감염인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여성이 HIV 감염인이 되었을 때 사회적인 인식은 그 여성이 성적으로 문란하며, 따라서 성을 판매한 여성이라는 ‘사회적 신분’을 가졌을 것으로 가정한다.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실질적으로 국가에 의한 전면적 금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성판매 여성이 HIV 감염인이라는 점이 밝혀질 때 그 여성의 불법성은 새삼스럽게 부각된다. 언론과 댓글이 주목했던 것도 여성의 성판매 자체가 아니라 HIV 감염인이 성판매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실정법을 위반하여 경찰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성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성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HIV 감염인이었으며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친구가 알선하는 성매매에 나섰다. 왜 이 여성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지적장애로 인해서 성판매에 대한 동의와 이후 벌어질 일련의 사태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지만, 설사 성판매를 인지하고 나섰다 해도 그것이 왜 범죄가 되어야 하는가. 심지어 타인에게 시킬 성매매를 계획하고 그로 인한 이득을 취하고자 했던 알선자보다 왜 더 중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건전한 성풍속’을 지킨다는 성매매처벌법으로 인해서 오히려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성적 낙인과 범죄자 낙인을 찍어 당사자를 고립시키고 사회에서 삭제하는 것이 성매매를 근절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인가. 전염성 질환을 가진 사람의 성행위를 통제하고 색출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상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의 목적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과 HIV/AIDS 치료가 현재까지 도달한 과학적 발전, HIV 감염인에 대한 인권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과연 이 조항이 잔존할 만한 합당한 가치가 존재하는가.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편 판사는 판결문에서 HIV/AIDS에 대해서 길게 덧붙였다. “피고인을 에이즈 감염인으로 낙인찍고,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은 피고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피고인이 사회적 낙인에서 해방되어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일을 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는 것이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국가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서 정한 것과 같이, 피고인과 유사한 경우에 처한 국민에 대한 보호와 지원, 차별 방지를 위한 조치,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과 홍보를 통하여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러한 대목은 이번 판결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상 전파매개행위조항에 대한 판결 중에서 가장 전향적인 판결이라고 평가받을만 하다. 하지만 HIV 감염인이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적절한 일을 찾을 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낙인의 핵심은 성적 낙인이며 그것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이다. 이는 성을 판매한 여성을 범죄자로 처벌하는 성매매처벌법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판사의 말대로 HIV 감염인이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는 것이 더 필요하기에, 우리는 HIV 감염인의 치료접근권을 약화시키고, 사회적으로 배제되도록 만들며, 부당한 경제적/성적 착취적 관계로부터 벗어나거나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성적 낙인과 예비 범죄자라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적장애를 가진 HIV 여성 감염인이 처한 사회적 맥락을 삭제하고 이 여성과 성매매를 알선한 남자친구, 남자친구의 친구 세명을 공동정범으로 묶어놓았을 뿐이다.
96개 단체와 2652명의 개인은 이 여성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피고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과 사회적 격리가 아니라 필요한 치료를 받고, 착취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이 경제적, 성적으로 착취받지 않고 지지와 지원을 통해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와 국가가 돕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끝끝내 이 여성에게 죄인이라는 지위를 부여한 국가가 진정 이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를 묻는다. 낙인에 근거한 법률에 의해서 죄인이 된 이 여성이 낙인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제 국가가 답하라.
2018년 5월 15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러브포원 /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 장애여성공감 /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 부산 지적장애 HIV 여성감염인에 대한 1심 판결에 부쳐
지난 9일 부산 지적장애 HIV 여성감염인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결국 이 여성은 죄인이 되었다. 지난 해 10월 언론과 인터넷 미디어를 혐오로 달구었던 사건이었다. HIV에 감염된 여성이 성매매를 했다는 소식에 ‘부산에이즈녀’ 라는 낙인의 딱지가 붙었고, 10월 19일 하루 동안 총 250여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언론과 댓글이 만들어낸 이러한 낙인은 당사자의 삶의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서도 이 여성이 처한 억압의 핵심을 짚어낸다.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질병에 노출될 수 있는 조건에 놓여있고, 치료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으며 타인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의학적인 사실 외에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낙인과 이러한 사실 자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에 국가로부터 관리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예비범죄자의 지위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여느 질병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러한 지위의 부여는 HIV 감염인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여성이 HIV 감염인이 되었을 때 사회적인 인식은 그 여성이 성적으로 문란하며, 따라서 성을 판매한 여성이라는 ‘사회적 신분’을 가졌을 것으로 가정한다.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실질적으로 국가에 의한 전면적 금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성판매 여성이 HIV 감염인이라는 점이 밝혀질 때 그 여성의 불법성은 새삼스럽게 부각된다. 언론과 댓글이 주목했던 것도 여성의 성판매 자체가 아니라 HIV 감염인이 성판매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실정법을 위반하여 경찰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성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성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HIV 감염인이었으며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친구가 알선하는 성매매에 나섰다. 왜 이 여성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지적장애로 인해서 성판매에 대한 동의와 이후 벌어질 일련의 사태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지만, 설사 성판매를 인지하고 나섰다 해도 그것이 왜 범죄가 되어야 하는가. 심지어 타인에게 시킬 성매매를 계획하고 그로 인한 이득을 취하고자 했던 알선자보다 왜 더 중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건전한 성풍속’을 지킨다는 성매매처벌법으로 인해서 오히려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성적 낙인과 범죄자 낙인을 찍어 당사자를 고립시키고 사회에서 삭제하는 것이 성매매를 근절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인가. 전염성 질환을 가진 사람의 성행위를 통제하고 색출하여 처벌해야 한다는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상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의 목적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과 HIV/AIDS 치료가 현재까지 도달한 과학적 발전, HIV 감염인에 대한 인권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과연 이 조항이 잔존할 만한 합당한 가치가 존재하는가.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편 판사는 판결문에서 HIV/AIDS에 대해서 길게 덧붙였다. “피고인을 에이즈 감염인으로 낙인찍고,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은 피고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피고인이 사회적 낙인에서 해방되어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일을 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는 것이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국가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서 정한 것과 같이, 피고인과 유사한 경우에 처한 국민에 대한 보호와 지원, 차별 방지를 위한 조치,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과 홍보를 통하여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러한 대목은 이번 판결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상 전파매개행위조항에 대한 판결 중에서 가장 전향적인 판결이라고 평가받을만 하다. 하지만 HIV 감염인이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적절한 일을 찾을 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낙인의 핵심은 성적 낙인이며 그것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이다. 이는 성을 판매한 여성을 범죄자로 처벌하는 성매매처벌법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판사의 말대로 HIV 감염인이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는 것이 더 필요하기에, 우리는 HIV 감염인의 치료접근권을 약화시키고, 사회적으로 배제되도록 만들며, 부당한 경제적/성적 착취적 관계로부터 벗어나거나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성적 낙인과 예비 범죄자라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적장애를 가진 HIV 여성 감염인이 처한 사회적 맥락을 삭제하고 이 여성과 성매매를 알선한 남자친구, 남자친구의 친구 세명을 공동정범으로 묶어놓았을 뿐이다.
96개 단체와 2652명의 개인은 이 여성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피고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과 사회적 격리가 아니라 필요한 치료를 받고, 착취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이 경제적, 성적으로 착취받지 않고 지지와 지원을 통해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와 국가가 돕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끝끝내 이 여성에게 죄인이라는 지위를 부여한 국가가 진정 이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를 묻는다. 낙인에 근거한 법률에 의해서 죄인이 된 이 여성이 낙인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제 국가가 답하라.
2018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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